최초로 온라인 개최된 2021년 NDC의 첫 날인 6월 9일, '서브컬쳐/오타쿠 게임으로서 덕질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부분들'을 주제로 '블루아카이브'의 넷게임즈 MX스튜디오 김인AD의 강의가 진행됐다.
김인AD는 '시각적 아름다움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사람'이라 정의한 아트디렉터로서 세션을 준비한 이유로 아트 디렉팅이라는 분야의 경험 공유가 많지 않음을 꼽으며 실제 AD역할을 수행하며 겪은 경험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세션의 내용은 마무리를 포함해 다섯 가지 파트로 나뉘어 구성됐다.
■ 방향성 설정
블루아카이브는 2018년 3월에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시동했고 아트는 그로부터 3개월 후인 6월부터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블루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아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전제로서 서브컬쳐 기반의 캐릭터 수집형 게임, 엄폐물을 사이에 둔 원거리 전투, 3D 전투 비주얼 및 SD등신 캐릭터라는 세 가지를 고려했다.
당시 함대 컬렉션을 시작으로 사물고 인물의 모에화가 아직 대세였고 중국발 2차원 게임들이 부상하면서 이쪽 분야의 레드오션화가 가속화되던 시기였으며 특이사항으로 비주얼 양식이 판타지에서 현대와 근미래 컨셉으로, 무거운 비주얼을 지향하는 시류였기에 아트 디렉터로서는 지금이 아닌 다음 세대의 비주얼 지향점을 고민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이에 레드오션이 예상되던 하드보일드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밝고 캐주얼함을 지향하게 됐다.
방향성을 설정한 후에는 세계관이 지향하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방향성에 맞는 세계관과 키비주얼을 확립했고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방향성과 분위기의 틀이 잡힌 후에는 IP의 상징성을 설정했다. 블루아카이브의 IP 상징성은 머리 뒤의 후광인 헤일로를 차용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에는 아트 분야별 생산 기반과 R&D를 마련한다. 이 시기는 프로젝트의 아트 기준 퀄리티를 찾기 위한 탐색 기간이며 좁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다양한 시도와 빠른 실패들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통적으로 추구한 부분은 스토리텔링과 확장성, 주제에 맞는 깨끗함과 청량한 느낌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집중한 것은 확장을 위한 단순화와 스토리텔링이며 캐릭터 디자인에 있어서도 알아보기 쉽고 비주얼적으로 다루기 쉬운 캐릭터가 추구된다. 마지막으로 IP의 핵심 키워드를 네 가지로 가다듬어 미소녀, 밀리터리, 학원, 육성연애라는 방향성을 잡아냈다.
■ 유저에게 제공할 매력요소
다음 단계에서는 일상과 전투 두 영역에서 아트가 제공해야 할 매력요소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무엇을 가장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조직일지, 유저에게 어떤 만족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점이 시장에서의 차별성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블루아카이브의 아트는 오타쿠라는 정체성과 모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조직의 특성을 고려해 가볍고 담백한 비주얼을 소화하기 적합한 조직이라 판단하고 일을 진행했다.
그는 이 장르의 1세대라 부를 수 있는 함대 컬렉션을 바탕으로 시장을 살펴 컨셉으로 군함, 상품으로 캐릭터, 가치로서 캐릭터와의 교감을 내세웠다고 파악했고, 유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캐주얼한 세계관과 캐릭터와의 애정관계를 보다 중요시하는 유저층을 고려했다. 거기서부터 미소녀 밀리터리 학원 연애 시뮬레이션, 줄여서 미연시를 컨셉으로 잡아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언급했다.
블루아카이브에서 가장 집중하고자 했던 것은 미소녀와의 상황, 환경과의 인터랙션이다. 유저와 캐릭터 사이의 교감을 위한 요소에 집중한 것은 캐릭터 게임에 있어 아트의 핵심 요소가 장르의 핵심가치인 캐릭터를 빛나게 하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소녀와의 교감을 위한 상호작용은 무드와 아이컨택으로 좁혔다. 또한 기존 캐릭터 게임 상품들이 성적 어필과 움직임을 주로 삼았으니 이와 다르게 움직임보다 교감을 위주로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학원물을 표방하고 있으니 교복 미소녀와 감성화보 방향으로 포커싱을 맞춰 상품 개발에 접목, 로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일러스트 상품 메모리얼 일러스트를 매력 요소로서 내세웠다. 이렇게 기준 작업물과 퀄리티가 확보된 이후에는 확장하는 정기 생산 작업에 착수하고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환경감, 두 번째로 캐릭터와의 교감을 늘리기 위한 표정변화, 세 번째로 머리를 쓰다듬거나 아이트래킹 요소를 통해 상호작용 요소를 더해 생산의 매력 포인트를 확보했다. 단순히 일러스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력요소를 바탕으로 SD모델 또한 감정표현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행했다. 스킬 컷인과 카페 반응, 픽업 모션 등에서 이런 부분들이 드러난다.
한편 전투에서도 상호작용을 키포인트로 접근해 오브젝트 파괴 등을 적용했다. 매력요소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아트의 구성이 미소녀와의 교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일상과 전투 두 가지 영역의 매력 요소를 모두 확보한 후에는 프로토타입이 마감된다.
■ 토대 만들기
프로토타입 마감 이후에는 급속도로 채용 및 생산 속도가 가속된다. 조직이 급격하게 커져감으로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할지, 어떻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할 수 있을지, 한 눈에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시킬 수 있을지를 아트 디렉터로서 고민하게 된다. 조직구성과 운영의 틀을 위해 아트 분야별 조직 구성과 R&R 설정을 하고, 두루뭉술하게 뭉쳐있던 조직을 분할 구성하며 각자 책임진 영역과 권한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 초기에 비해 조직이 경직되긴 했지만 협업을 위해 이에 대한 정의를 이른 단계에서 진행했다.
기본적인 조직구성을 갖춘 뒤에는 정기회의 및 기본적 피드백 프로세스를 구성해 돌발적 피드백으로 인한 조직 경직과 불안감 조성을 막기 위한 정례화를 꾀했다. 한편 분야별 포스트모템과 가이드문서를 작성하고, 그외 환경적 부분에서 1:1면담을 진행해 정보 공유와 피드백을 진행했으며 작업 채널, 정기보고 및 기록저장, 정보 공유 등 작업 공유 및 열람 창구 마련에도 힘썼다.
이렇듯 기본적 운영의 틀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기조와 어긋나는 작업이 다수 발생하기 마련인데, 달성과정까지의 시행착오가 잦은 것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다. AD의 부재에도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기준점을 마련해 문제 해결을 기대했으며 매력에 대한 기준, 영역에 대한 기준 등 결정권자의 머릿속을 추리하면서 발생하는 눈치싸움이나 타임로스를 제거하려고 했다.
아트 톤 앤 매너를 정립하고 이를 반영한 마스코트 캐릭터 아로나의 제작에도 착수하게 된다. 튜토리얼, 업무 페이지, 가챠 등 전반적으로 프로젝트의 얼굴마담 캐릭터가 되어 다양한 매력이 난립하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아트의 기조를 응축한 상징성으로 작동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톤 앤 매너 정리가 마감된 후에는 프로젝트 공개 시기 임박에 따른 프로모션 비디오 제작에 들어갔고, 핵심 등장인물과 세력, 세계관 분위기와 기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프로모션 비디오는 기본적으로 외부 마케팅에 활용하지만 내부 프로파간다로도 사용되었으며 유저에겐 향후 전개에 대한 떡밥을 흘리도록 설계되기도 했다.
제작과정에서 2D 애니메이션 제작방식과 인력구성을 차용해 IP 기준 작화와 색채를 정립하고 분업을 통한 퀄리티 안정화를 추구했으며 일련의 프로모션과 운영을 통해 IP 기준을 지켜줄 수 있는 심볼과 틀을 확립할 수 있는 이 시기에 꾸준히 기준점 정립과 정체성 확립을 시도했다. 그는 이에 대해 '우리도 아직 잘 모르는 것을 고객이 알아줄 수는 없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강화, 무엇을 어디까지
PV 제작과 발표까지 거치면서 프로젝트의 불투명했던 부분들이 명확해지고 비주얼이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에 프로젝트에서 아트 디렉터가 맡는 역할은 반복 플레이와 폴리싱이다. 이 단계에서부터 갈수록 운영과 아트 QA에 집중하게 되어 잔소리를 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FGT나 CBT를 통한 유저 피드백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캐릭터의 체형을 비롯한 부정적 요소들을 수정 및 배제하게 된다. 남은 여력은 NPC 제작이나 시나리오 서포트, 마케팅 리소스 등 IP 보강에 투입됐다.
이 때 오픈 이후에 대해 방치되었던 물음이 떠오르며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온 것이 시작점에 서기 위한 것이라면 이후엔 어떤 시각적 가치를 제공하고 어떻게 신선함을 유지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답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리소스를 생산하고 예쁘고 화려한 것을 만들지, 경쟁작에 비해 나은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에 있지 않았으며 '유저로서 캐릭터 게임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 결과 세계에 닥친 위기와 모험, 캐릭터가 가진 신념과 동기에 대해 말하고 유저가 쏟은 애정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생각들을 거치면서 그는 블루아카이브의 아트가 향후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는 내러티브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이브 이후 아트가 지향할 목표, 우리만이 줄 수 있는 시각적 경험과 내러티브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고 그 결과물을 하나로 압축한 2nd PV를 제작했다. 이 제작을 통해 세계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분위기 제시나 향후 이벤트의 무드 설계, 소재 마련 및 내부 프로파간다를 가져갈 수 있었으며 일본 서비스를 개시하고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소소하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IP 확장성까지 제시하면서 개발이 마감됐다. 론칭 당시 아키하바라에 광고가 걸려도 어색하지 않은 게임이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그 자리에 광고가 걸리는 등 소소한 달성들이 있었다. 그는 아직 미비한 부분도 많지만 여러 고비를 넘어 지금까지도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주변의 동료들 덕분에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초기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어떻게 같은 그림을 애정을 가지고 함께 그려갈 수 있을까?라며 안았던 세 가지 고민은, 지금까지 언급한 방향성과 매력요소, 토대 만들기, 강화 시키기의 단계를 거치면서 그 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
끝으로 김인AD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함께 나아가는 신규 프로젝트 진행에 대해 완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어떤 것을 만들지 확인해 나간다'는 생각을 했다며 행운에 기대기보다 작은 실패를 많이, 빠르게 경험함으로써 확인하고 진행한다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돌아가기엔 멀리 왔고 나아가기에도 멀게 느껴지던 프로젝트의 중간 포인트가 가장 힘든 시기였고 아직 검증하지 못한, 시장에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할수록 의심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아트 디렉터의 역할은 스스로를 등불로, 나아갈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니 시기와 환경, 위치에서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선택지와 결정이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