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롤드컵 최고의 우승 후보로 꼽혔던 젠지가 4강에서 DRX에게 패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특히나 이 결과는 젠지의 부진보다는 DRX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승리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변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로 인해 T1과 DRX라는 누구나 예상하지 못했던 결승전 매치가 성사됐다.
물론 T1은 결승전 진출이 어느 정도 예상됐던 팀이자, 이번 롤드컵에서도 상위권으로 평가받던 팀이다. 하지만 DRX는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승 진출은 고사하고 8강전 진출도 쉽지 않다고 예상했던 팀이었고 서머 시즌 DRX의 순위도 6위에 그쳤다.
롤드컵 역사 상 최고의 언더 독 신화를 만들어 낸 DRX. 이미 4시드 최초의 결승 진출과 같은 다양한 기록을 만들어 냈고 만약 우승까지 한다면 근 시일 내, 아니 롤드컵 역사에서 깨지지 못할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과연 DRX가 이처럼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DRX 결승 진출!!!
- 마치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은 DRX의 기록들
DRX는 22 서머 시즌 6위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리브 샌드박스에게 패하며 서머 시즌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이 예상한, 그리고 그 정도의 전력을 보여 준 결과였다.
하지만 롤드컵 선발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발전 첫 경기, 3세트까지 1승 2패로 kt롤스터에게 밀리던 DRX는 이 때부터 역전의 명수로 거듭나게 된다.
4,5 세트를 승리하며 역전승을 만들어 낸 것은 물론이고, 최종전에서는 리브 샌드박스를 상대로 2세트 연속으로 패배하며 패색이 짙던 경기에서 남은 3개의 세트를 내리 따 내면서 더욱 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그만큼 롤드컵의 선전 역시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DRX는 달라졌다. 플레이 인 스테이지 1황이라 평가받던 RNG전에서 가볍게 승리하며 전승으로 본선 리그에 직행했다. 선발전과 플레이 인 스테이지를 거치면서 팀 전력이 점점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RNG 전은 달라진 DRX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DRX 서사시의 유일한 옥의 티라 할 수 있는,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의 RGE전 패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좋았을 정도로 그룹 스테이지에서도 조 1위를 확정 지으며 8강전에 진출했다.
어찌 보면 그룹 스테이지 1위는 DRX가 결승에 진출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데, DRX의 끈끈한 행보는 8강전과 4강전에서도 이어졌다. EDG와의 8강전에서는 2세트 연속 패배 후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3세트를 내리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고, 젠지와의 4강전에서는 1세트 패배 후에 2세트를 역전, 이후 3,4세트를 연속 승리하면서 팀의 결승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분석력
DRX의 행보가 무서운 것은 바로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와 정신력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분석 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플레이 인 스테이지와 그룹 스테이지와 같은 단판 승부를 제외하면 DRX는 롤드컵 선발전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총 네 번의 다전제 경기에서 모두 역전승을 이루어 냈다. 심지어 리브 샌드박스와의 선발전 최종전과 8강 EDG전에서는 역스윕으로 승리했고(8강전 역스윕 기록 역시 DRX가 최초다), 젠지 전에서는 1패 후 3연승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러한 플레이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역스윕 경기가 한 번만 나와도 대단한 일인데, DRX는 롤드컵 여정에서 두 번이나, 그리고 모든 경기에서 역전승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선수들의 정신력이 극에 달하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조급해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쳤다. 운에 기댄 무리한 플레이도,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도 없었다.
실제로 2세트를 내리 패한 상황에서 JDG도, RGE와 EDG도, 심지어 젠지 역시 멘탈이 나가면서 다음 세트에서 대패했다. 하지만 DRX는 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로 평소와 다름없는 플레이를 했다.
이 경기부터 DRX의 역사는 시작된다
현재의 명확한 상황 분석도 뛰어났다. 자신들의 경기를 철저히 분석하고 상대에게 승리할 최적의 방법을 연구해 승리를 만들어 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역전승이라는 전제 자체가 일단 첫 세트를 무조건 패하고 시작한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이렇듯 초반 세트에 약하다는 부분은 분명 지금까지 상대했던 팀들이 DRX보다 실력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실제로도 선발전부터 상대해 온 다전제 팀들 중 비슷한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kt롤스터 전에서만 1세트를 승리했을 뿐(사실 상 1세트는 그냥 kt롤스터가 이기라고 던져 준 경기였다) 적어도 팀 평가에서 최소 한 체급 이상 우위로 평가받던 나머지 팀들에게는 1세트, 심지어 2세트까지 패배했다.
만약 DRX가 아닌 팀들이라면 이후 허무하게 패배했을 확률이 높지만 DRX는 달랐다. 더욱 더 집중하며 실수를 줄여 나갔고, 상대의 방심을 철저히 활용했다. 또한 패배한 경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실한 전술변화와 밴픽 수정으로 이기는 경기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흔들리지 않는 멘탈까지 더해지다 보니 최적의 결과가 만들어졌고, DRX가 첫 승리를 거둔 시점부터 상대 팀은 쫓기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서 플레이에 실수가 많아졌다. 반면 DRX는 승리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단단해져 마지막 세트 승리 시에는 일방적인 경기가 연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선수들 간의 피드백은 가히 이번 롤드컵 참가팀 중 최고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과 전략적인 부분이 합쳐지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됐다.
물론 단순히 이런 외적인 부분만 있었다면 결승전에 올라갈 수 없었다. 선수들의 기량이 성장한 것 또한 빠질 수 없는 이유다.
- 저점이 사라진 선수들의 활약
DRX에서 현재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를 뽑는다면 단연 제카다. 제카는 결승전에 진출하는 동안 스카웃과 나이트, 쵸비 등 1티어 급 미드 선수들을 넘어서는 활약을 하며 T1의 페이커와 더불어 올 시즌 롤드컵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인정받고 있다.
롤드컵에서 활약했던 역대 미드 플레이어(페이커, 루키 등)와의 비교가 이루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선 보이고 있고, 기복도 없다. 롤드컵 내내 고점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제카가 없었다면 DRX의 결승 진출은 사실 상 불가능했다
주목할 부분은 성장세다. 서머 시즌의 제카와 지금의 제카는 완전히 다른 선수다. 아마도 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큰 성장이 이루어진 선수가 아닐까 싶은데, 이러한 성장세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보니 경기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JDG의 카나비 키우기 전략 등 다른 팀들이 팀의 주축 선수에게 상당한 지원을 해 주는 것과 달리 제카는 뚜렷하게 지원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 이상의 결과를 낸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그런가 하면 특유의 고점과 저점 플레이를 오가던 킹겐 역시 롤드컵에서는 저점 플레이가 거의 나오고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한다면 킹겐 자체가 성장했다고 봐도 무방한데, 과거에는 주사위 1과 6 사이를 오가는 플레이를 했다면 지금은 3~6 사이에서 플레이가 결정되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고점 자체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롤드컵에서는 저점 자체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DRX의 약점이었던 정글러도 이제는 안정적이 됐다. 플레이 인 스테이지까지 주한과 표식을 같이 기용하며 정글러의 불안감을 확인시켜 줬던 DRX는 그룹스테이지 들어 표식을 메인으로 고정하면서 표식에게 힘을 실어준 결과 현재 표식의 안정세가 상당히 올라온 상태다. 이제는 단점 포지션이 아니라 장점 포지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캐니언이나 카나비처럼 캐리 능력이나 번뜩이는 플레이가 다소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정감 만큼은 최고다. 그룹 스테이지까지만 해도 표식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지난 8강전과 4강전에서 보여 준 실력만 본다면 충분히 기본 능력 이상은 해 주고 있고 강타 싸움에 상당히 능숙한 특유의 장점도 살아난 모습이다.
실제로 현재 모습만 본다면 카나비와 캐니언에 이은 롤드컵 정글러 3순위권의 실력은 되는 듯하다.
데프트가 아직 스프링 시즌처럼 고점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는 하나 기복 없는 무난한 플레이가 이어지고 있으며, 베릴은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다. 현재의 폼은 20 시즌 담원 기아가 우승할 당시와 상당히 흡사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준수하며, 커맨드 능력 또한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DRX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원동력은 바로 모든 선수들이 경기를 치루며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사실 현재의 전력 그대로 서머 시즌, 그리고 롤드컵을 시작했다면 결코 6위와 4시드에 머무를 만한 전력이 아니다. 그만큼 모든 선수가 경험치를 쌓으며 두드러진 실력 상승이 보이고 있다. 8강전 후의 DRX가 다르고 4강전 후의 DRX가 다르다. 이번 결승전에서는 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 하늘을 찌르는 사기,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지난 경기 인터뷰에서 데프트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4강에 가고 싶었는데 실현되서 기쁘다’ 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20시즌 담원 기아에서 우승을 맛본 베릴 외에 다른 선수들은 롤드컵 결승이 처음이다.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 승리가 쉽지 않은 상대들과의 경기를 어렵게 승리하고 올라왔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기는 이미 한계까지 올라와 있다.
이렇듯 선발전을 통과하고 플레이 인 스테이지를 거쳐 그룹스테이지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며 상승한 사기가 이후 8강전 및 4강전에서도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게임에서 사기가 높으면 보다 큰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스포츠 경기에서도 사기는 선수들의 능력 향상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덧붙여 덩달아 커지는 자신감과 동기 부여는 DRX가 자신들의 실력 그 이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됐다.
거함 젠지에게 승리한 후의 DRX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 이제 남은 것은 한 경기다
많은 이들이 성장형 드라마나 만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DRX는 현재 롤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성장형 드라마를 쓰고 있는 팀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고, 이들의 행보가 어디까지 갈지도 관심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결승전 상대인 T1 역시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다. DRX에 비해서는 그 서사시가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T1에게도 충분한 스토리가 있고, 우승하게 될 경우의 이슈나 상징성 또한 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DRX는 지금까지의 롤드컵 역사상 가장 어메이징한 팀이면서도 드라마틱한 팀이라는 점이다. 롤드컵 역사 상 가장 아래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팀은 지금까지 없었다. 선발전 4순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 팬들이 DRX에 열광하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많은 이들이 DRX의 언더 독 신화를 보며 마치 슬램덩크의 북산을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북산은 능남과의 경기에서 온 힘을 쏟아 부으며 기적처럼 승리했지만 해남전에서는 허무하게 패했다. 과연 DRX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