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고 베는 쾌감 뒤에 감춰진 빛과 그림자 '마블 울버린'

[리뷰] 마블 울버린
2026년 09월 17일 08시 13분 54초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플레이스테이션의 독점 라인업을 책임져 온 인섬니악 게임즈가 이번에는 엑스맨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모범적 아이콘,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한 신작으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뉴욕의 빌딩 숲을 자유롭게 누비던 오픈월드의 해방감을 내려놓은 대신, 개발진은 울버린 본연의 거친 야성과 캐릭터 고유의 서사를 극대화하기 위해 클래식한 선형적 액션 어드벤처 구조를 선택했다.


아다만티움 클로가 선사하는 묵직하고 잔혹한 액션

 

이번 작품의 가장 확실한 무기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정체성을 거짓 없이 직관적으로 담아낸 전투 시스템이다. 원작 팬들이 오래도록 바라왔던 아다만티움 클로의 날카로움과 힐링 팩터의 생존 능력을 유혈이 낭자한 19금 액션 연출로 가감 없이 표현했다. 적을 공격하며 차오르는 분노 게이지를 활용해 치명타를 날릴 때 펼쳐지는 잔혹한 피니시 연출은 눈과 손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특히 캐릭터의 등 뒤에 바짝 붙은 카메라 앵글은 전투의 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넓은 시야로 전황을 파악하던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르게, 적과의 거리를 좁혀 전투의 한복판에 뛰어든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PS5 듀얼센스의 스피커 효과음과 입체적인 햅틱 진동이 더해지면서 클로가 적의 살과 뼈를 파고드는 특유의 묵직한 타격감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완성된 영웅 이전에 인간 '로건'을 조명한 서사

 

이야기는 거친 히어로 '울버린'의 활약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과거를 잃어버린 채 고뇌하고, 상처받으면서도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 '로건'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거친 언행 뒤에 숨겨진 그만의 묵직한 다정함과 깊은 '정(情)'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핵심 동력이 된다.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등장하는 진 그레이, 세이버투스, 미스틱, 너새니얼(미스터 시니스터) 등 원작 코믹스의 인물들은 단순한 팬 서비스를 넘어 울버린의 정체성 확립에 긴밀하게 얽혀든다. 원작의 설정을 적절히 각색하고 비틀어 낸 주조연 간의 복잡한 감정선과 밀도 높은 컷신 연출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한 편의 웰메이드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를 직접 조작하며 관람하는 듯한 강한 흡입력을 느끼게 만든다.




익숙해지는 쾌감, 그리고 시스템적 한계

 

그러나 호쾌한 첫인상 뒤에 감춰진 명확한 단점들 역시 플레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적의 공격을 패링하고 회피한 뒤, 발차기나 특수기로 경직을 유도해 처형을 날리는 기본 패턴이 초반부터 엔딩까지 비슷하게 반복된다. 스킬 트리를 해금하고 레벨을 올려도 전투의 근본적인 흐름을 뒤흔들 만한 변주가 부족해, 후반부로 갈수록 첫 전투의 강렬함이 점차 둔해지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또 캐릭터에 극도로 밀착된 카메라 구도는 몰입감을 높여주는 반면,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이나 원거리 사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다수의 적과 싸울 때는 시야의 제한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피로감과 답답함을 유발한다.

 

게다가 선형 전개 속에 배치된 일부 과거 기억 탐색이나 디펜스 형태의 미션은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며, 반복성이 강해 게이머를 지치게 한다. 이렇게 반복적인 플레이를 제공하다 보니 AAA급 타이틀이라는 기대치에 비해, 불필요한 분량 부풀리기를 억제한 선형 구조 특성상 전체 플레이 타임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른용 스파이더맨'의 탈을 썼지만... 표현만 잔혹해졌을 뿐

 

인섬니악 게임즈는 이번 신작을 통해 선혈이 낭자하고 신체가 절단되는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어른용 스파이더맨'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표현의 수위가 올라가며 자극이 강해졌을 뿐, 개발사의 전작인 '마블 스파이더맨'과 비교했을 때 게임의 본질적인 틀과 시스템 면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장르적 발전이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동일한 전투 골격에 수위만 높인 유혈 스파이더맨'이라는 비판에서도 알 수 있듯, 적의 공격을 타이밍 맞추어 회피/패링하고 게이지를 채워 특수기 및 처형 연출을 발동하는 기본 전투 메커니즘은 '마블 스파이더맨'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피부만 울버린으로 바꾼 수준이다. 웹슈터를 이용한 제압이 아다만티움 클로를 이용한 절단으로 바뀌었을 뿐, 공방의 기본 리듬과 손맛의 본질은 전작의 콤보 시스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게다가 오픈월드를 뗏음에도 발전 없는 일자형 진행은 게임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마블 스파이더맨'의 큰 장점이었던 시원시원한 오픈월드 이동 요소를 완전히 빼버리고 선형적 구조를 택했음에도, 스테이지 내부의 미션 구성이나 동선 설계는 과거의 단조로운 패턴을 반복한다. '적 등장 → 전투 → 좁은 통로 이동 → 컷신'으로 이어지는 진부한 구조는 선형 액션 게임 특유의 밀도 있는 레벨 디자인을 보여주기보다는, 단순히 스파이더맨의 샌드박스 요소만 거둬낸 빈자리를 다소 지루하게 느끼게 만든다.​

 


 

보스전 역시 적의 패턴을 읽고 패링과 회피를 반복하다 QTE(버튼 연타) 연출로 마무리하는 전작의 형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미션 중간중간 분위기 환기를 위해 넣은 추적이나 서브 콘텐츠 또한 전작의 모의 훈련이나 수집 요소의 변형에 불과해, 인섬니악이 이전에 만든 게임들을 이미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금세 식상함과 매너리즘을 느끼게 된다.

 

결국 '마블 울버린'은 겉모습만 19금 핏빛으로 칠해놓았을 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스파이더맨에서 이미 수없이 경험했던 게임 플레이의 재탕에 가깝다. '어른들을 위한 히어로물'이라는 과감한 콘셉트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게임성이나 시스템적 모험을 시도하지 않은 채 전작의 성공 공식에 안주했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론적으로 '마블 울버린'은 원작 속 로건이라는 캐릭터의 고독한 매력과 과격한 클로 액션을 인섬니악 특유의 기술력과 연출 노하우로 재해석한 작품이지만, 전작의 재탕에 가까운 발전 없는 시스템, 반복되는 전투 패턴과 카메라 시점의 호불호, 그리고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많은 아쉬움을 주는 게임으로 남을 것 같다.

 


 

김성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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