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샷은 창간 18주년을 맞이하여 국내 게임산업 30년을 조명해 보았다.
게임이라는 컨텐츠는 개인의 취향을 상당히 많이 타는 편이다. 좋아하는 장르가 존재하는 영화처럼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가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인간의 특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호하는 게임 장르가 반드시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게임 업계에 커다란 이슈가 생기거나 엄청난 대작 게임의 등장은 이러한 개인적 선호도를 급격히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누구나 다 하는데 나만 안 한다면? 이러한 부분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주변 여건이 중요하게 작용하듯이, 게임 또한 주변 상황이 게임의 라이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개인의 경제력이나 나이, 부모가 가지는 게임에 대한 생각 등 많은 부분들이 게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어렸을 때는 경제적 부담으로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사회인이 되면서 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만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가지게 되는 게임의 취향은 변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배틀 그라운드’가 대세지만 몇 년 후에도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과연 지금까지는 어떤 장르들이 사랑을 받아 왔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게임들이 꽃길을 걷게 될 것인가.
■ 게임이 그냥 좋았던 80년대 시절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70년대 초부터 상용화 게임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이보다 다소 늦은 80년 즈음 해서 게임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 게임 시장의 초창기라 할 수 있던 80년대 초 중반, 일명 국내에 컴퓨터 게임이라고 하면 오락실이라 불리던 동네 게임 센터밖에 없던 시절에는 사실 장르적 구분이 무의미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하던 게임, 그리고 한정된 용돈으로 인해 자기가 잘 하는 게임(잘 하는 게임을 해야 오래 플레이가 가능하니까) 위주로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 있으면 하는 것이지, 골라서 할 입장은 아니었다. 물론 이 때의 추억이 이후 게임 라이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일명 왕탱크, 필자가 잘해서 2시간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한 게임이었다
이러한 초창기 게이머들에게 어느 정도 장르적 개념이 생기게 된 것은 바로 80년대 중반이다.
초창기 PC의 보급과 가정용 게임기의 등장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게임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 국내에도 보따리 장사꾼에 의해 닌텐도의 패미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패미콤은 닌텐도에 의해 복각판이 발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것이 더 좋다’ 정도의 차이였지, ‘이것이 싫다’ 는 아니었다. 그럴 정도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게임을 즐기기 위해 쓸 수 있는 돈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락실에서 보지 못했던 ‘롤플레잉’ 이나 ‘시뮬레이션’ 장르를 PC나 패미콤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이러한 장르에 대한 인지를 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기억될 만 하다.
■ ‘스트리트 파이터2’ 신드롬을 일으키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1991년,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탄생한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단숨에 동네의 모든 오락실을 점령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학교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의 주 관심사는 스파2 였고 학교가 끝나고 오락실에 들러 플레이를 하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국내에서의 첫 번째 게임 신드롬을 연 작품은 바로 스파 2였다. 특히 당시 게임의 주요 고객층이던 초,중,고등 학생들의 묘한 경쟁 심리를 자극하면서 더더욱 큰 인기를 끌었다.
브랑카를 잘 하는 지인은 심심하면 브랑카 흉내를 냈다(다들 그런 친구들 있지 않았나?)
이후 ‘아랑전설’이나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등 다수의 대전 격투 게임들이 발매되면서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게임 시장은 대전 격투 게임이 주가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오락실은 대전 격투 게임 중심으로 구색을 맞췄으며, 개인적인 취향과 상관 없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열풍은 1994년 발매된 ‘킹 오브 파이터즈’와 3D 기반의 격투 게임 ‘버추어 파이터’ 및 ‘철권’ 시리즈의 인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질과 양적인 성장을 이루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95년을 정점으로 하여 점차 그 인기가 쇠퇴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그만큼 게임 시장이 발전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종류가 많아지고 게임의 주류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되면서 게임에 대한 애착이 상당 부분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네임드 수준은 아니지만 필자도 동네 오락실에서 110500연승을 한 기억이 있다.
90년대가 격투 게임의 전성기이자, 대세였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격투 게임에 심취해 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스파2가 갓 발매되었을 당시는 누구도 다른 게임에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심지어 일본 콘솔 게임을 즐기던 주변 지인들도 스파 판에 뛰어들었을 정도였다) 스파 2의 인기가 한풀 꺾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조금씩 여러 갈래로 특정 장르를 선호하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의 콘솔 게임과 점차 성장하기 시작한 PC 게임이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닌텐도의 패미콤을(정확히 말하면 저렴한 대만산 짝퉁)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보다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슈퍼 패미콤까지 등장하면서 콘솔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RPG나 SRPG, 시뮬레이션 같은 보다 긴 시간을 요하는 장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국내 게이머들의 수와 비교하면 콘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매우 적은 수지만 적어도 이들의 게임에 대한 충성도는 그 누구보다도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94년 발매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와 95년 탄생한 SRPG 게임 ‘창세기전’은 이렇듯 일본 콘솔 게임 유저들의 전유물이었던 RPG 장르를 보다 대중적인 장르로 만드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특히나 만화가 김진 씨의 일러스트를 채용해 더욱 화제가 됐던 창세기전의 경우는 그 화제성이 더욱 컸다. 일본식 RPG에 익숙한 이들은 물론이고, 국내 게임으로는 처음 발매된 SRPG의 매력에 많은 이들이 흠뻑 빠진 것이다.
덕분에 90년대 중반은 다채로운 장르의 게임들이 사랑 받는 상황이 됐다. 물론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장르적 구분과 이를 좋아하는 팬 층이 생기게 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워크래프트 2’ 와 ‘커맨드 앤 컨커’ 를 통해 RTS가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끝판왕 ‘스타크래프트’ 의 등장
그러나 1997년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춘추 전국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적어도 국내에서 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파격적인 게임, 그리고 ‘국내 게임 역사는 이 게임 발매 전과 후로 나뉜다’는 미사여구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된 것이다.
H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그 생명력이 더욱 길어졌다
당시 스타의 인기는 너무나 대단해서 그간 대전 격투에 심취해 있던 게이머는 물론이고 콘솔 및 PC 게임 유저와 게임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 그리고 연령 상으로 게임을 잘 즐기지 않던 30대와 40대까지 스타를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뭐 스타에 관해서는 게임샷에서 특집 기사로 다룬 적이 있고(궁금하다면 보다 자세한 스타 이야기를 확인해 보자) 워낙 많이 언급된 부분이기에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지만 당시는 학생과 직장인 모두 스타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덕분에 그때까지는 친숙하지 않은 장르였던 RTS가 국내의 주류라 할 수 있던 RPG와 대전 격투 장르를 누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후 발매된 국내 게임의 상당수가 RTS 장르로 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스타의 아류작 게임이었지만…
2000년에는 블리자드의 또 다른 야심작 ‘디아블로 2’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액션 RPG 장르의 디아블로 2는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블라지드를 최고의 게임 제작사로 올리는데 일조했다. 특히나 이 게임은 CD키가 없으면 멀티 플레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스타는 프리섭을 통해 불법 복제품으로도 멀티 플레이가 가능했다) 매출 면에서도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디아블로 2의 발매는 그간 RTS 장르에 치중되어 있던 국내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는 곧 액션 RPG 장르의 성장은 물론, 지금까지와 다른 다채로운 장르의 게임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실제로 스타와 디아블로 2의 영향으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PC 패키지 게임이 출시된 시기이며, 그만큼 국내에서 제작된 게임도 많았다. 스타가 이슈화 되었음에도 게이머들은 미친 듯이 발매되는 게임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게임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기도 했다. 뭐랄까 스타는 장르를 초월한 신계의 존재이니 논외로 하고 말이다.
■ 온라인 게임, 태동을 시작하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말, 스타의 인기를 뒤로 한 채 조금씩 성장을 해 오던 게임이 있었다. 바로 국내의 온라인 게임 시대를 연 장본인 ‘바람의 나라’ 와 ‘리니지’다. 이 두 게임은 완벽한 온라인 기반의 RPG 장르(MMORPG)로 제작되어 지금까지의 게임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두었고, 이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스타의 최 전성기라 할 수 있던 1999년대 까지는 다소 주춤했지만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두며 국내에 MMORPG라는 장르를 확립하게 만든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자, 아직까지도 서비스 되고 있는 국내 최 장수 게임
이러한 온라인 게임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지금도 국내 게임 시장에 확실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당시 플레이를 위해서는 매 달 패키지 게임 하나 정도의 비용인 3만원 정도의 정액 결제를 해야 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게임 자체도 학생들보다는 경제적 지출이 가능한 20대 이상의 회사원들이 많았고,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실제 국내 게임 시장의 주류 연령층보다는 조금 더 높은 연령대로 유저층이 형성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매력은 플레이 하는 유저들을 게임 속에 빠져 들게 했고, 한 번 온라인 게임에 빠져 들면 다른 장르의 게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조차 멀리 할 정도로 중독성이 높았다. 이는 유저들의 충성도로 이어졌고 제작사로서는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그간 어떤 장르의 게임을 좋아하던 상관 없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게 되는 순간 게이머들은 온라인 게임이 베스트 게임이 되어 버렸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와 같은 온라인 게임이 성공을 하게 되자, 많은 제작사들은 PC 패키지 시장을 버리고 온라인 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기껏 게임을 만들어도 불법 복제로 인해 수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뻔했다. 덕분에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은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당시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던 게임 포트리스
이후는 온라인 게임, 정확히 말하면 MMORPG의 천국이 됐다. 그리고 이제 막 대학생과 사회 초년성에 접어들기 시작한 어린 시절 게임 키드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게임을 즐기거나 콘솔 게임을 하는 것, 그리고 스타나 디아블로 2와 같은 과거 게임을 즐기는 것뿐이었다. 게임센터는 하향세에 접어들어 그 수가 줄어가고 있고 패키지 게임은 일부 대작 게임들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게이머들은 반 강제적으로 플레이 장르가 고정되는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나마 필자처럼 콘솔 게임을 즐겼던 이들에게는 조금 더 선택지가 다양했지만 국내 전체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5%도 안되는 협소한 상황에서 MMORPG를 즐기지 못하는 게이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 캐주얼 게임의 약진
하지만 분명 틈새 시장은 존재했다. 1999년 스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무렵, ‘퀴즈퀴즈’ 라는 독특한 퀴즈 온라인 게임이 등장했다. 이 게임은 당시 MMORPG 일색이던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키드 들에게는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온라인 게임이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합법적인 게임일 뿐 솔직히 장르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퀴즈퀴즈의 성공은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템이나 장비가 없어도 퀴즈만 잘 맞추면 남들보다 앞설 수 있었다.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플레이가 가능했고 말이다.
퀴즈퀴즈의 성공 이후 넥슨은 다양한 종류의 캐주얼 온라인 게임들을 내 놓기 시작했다. 이면에는 바람의 나라 이후 야심차게 내 놓았던 ‘택틱컬 커맨더스’ 나 ‘엘리멘탈 사가’ 등의 실패가 크게 작용했다. 이후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넥슨은 ‘부분 무료화’ 와 ‘캐주얼 온라인 게임’ 이라는 두가지 명제를 핵심으로 삼기 시작했다.
비앤비의 캐릭터들은 이후 카트라이더로 이어진다
덕분에 2000년대 초의 게임 시장은 연령에 따라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졌다. 20대 이상의 게이머들은 스타와 디아블로2, 그리고 MMORPG를, 10대들에게는 넥슨 식의 캐주얼 온라인 게임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의 이면에는 개인의 경제적인 능력이 크게 작용했고, 연령대에 따른 취향의 영향도 컸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빠른 조작이 요구되는 게임을 기피하고, 장시간 플레이를 즐기는 것을 선호하며, 어릴수록 보다 경쟁에 재미를 느끼며 템포가 빠른 게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카트라이더’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10대는 물론이고 스타와 MMORPG에 지쳐 가던 20대를 효과적으로 사로잡기 시작했다. 덕분에 카트라이더는 넥슨의 새로운 효자 게임으로 우뚝 서게 된다.
살인적인 ‘부분 유료화’ 체계를 국내에 전파시킨 카트라이더
카트라이더는 친구들과의 확실한 경쟁 심리가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 오락실에서 대전 격투 게임으로 친구들을 제압했던 것처럼 카트라이더를 통해 승리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여기에 한 번의 경기에 걸리는 시간도 적어 부담감도 덜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를 통해 카트라이더로 대변되는 캐주얼 온라인 게임들은 국내 게임 시장에 확실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10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 2000년대 중반, FPS 장르 게임 계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다
과정이야 어쨌든 넥슨의 다양한 캐주얼 게임의 성공은 그간 MMORPG의 영향력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장르의 온라인 게임이 출시되는데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바로 FPS 장르로, FPS 장르의 온라인 게임의 인기는 MMORPG가 아니어도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계기가 됐다. 특히나 당시 온라인 FPS의 선두 주자였던 ‘스페셜 포스’는 수 많은 MMORPG들을 제치고 PC방 게임 순위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인기는 높았지만 퀄리티 자체는 당시의 다른 PC 게임에 비해 형편 없었다
FPS 성공의 이면에는 전 세대의 공감대가 자리 잡았다는 부분이 크다. MMORPG는 분명 제한적인 경쟁 관계가 존재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실력보다 레벨과 아이템의 영향이 많이 작용한다. 하지만 FPS는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고, 그만큼 경기에서 이기는 즐거움이 높다. RTS처럼 복잡한 규칙? 그런 것도 전혀 없다.
무엇보다 기존 RPG나 RTS 세에 가려 인기를 얻지 못했던 FPS가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되면서 그간 존재했던 수 많은 FPS 매니아들이 표면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유저 층을 거느리고 있음에도 할 만한 게임이 없어 침묵을 지켰던 이들이 온라인 FPS 게임을 통해 부활한 것이다.
스페셜포스의 성공 이후 국내 게임 시장은 확실한 지각 변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간 PC 게임에서 절대적인 왕좌를 지켰던 RTS 대신에 직장인들은 MMORPG를, 학생들은 캐주얼 게임과 FPS 같이 빠르게 플레이가 이루어지고 승부가 명확한 게임으로 취향이 나뉘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 2011년, 새로운 지존 ‘리그 오브 레전드’ 의 등장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의 또 다른 변화는 그간 한국형 MMORPG가 대세로 자리 잡은 시장에서 2005년 출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의 영향으로 ‘리니지’ 같은 게임은 아저씨들이 즐기는 게임이라는 인상이 강해진 것이다. WOW 식의 퀘스트 중심 MMORPG는 보다 젊은 층이 하는 게임으로 인식되면서(실제로도 기존 게임에 익숙한 올드 유저는 보다 복잡한 조작이 필요한 WOW 같은 게임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같은 MMORPG라고 해도 국내 작품에 비해 젊은 유저 층의 유입이 많았다.
이러한 결과로 2000년대 후반의 국내 게임 시장은 보다 다채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형MMORPG와 WOW 및 ‘아이온’ 같은 퀘스트 중심의 MMORPG, 그리고 온라인 FPS 게임 및 ‘피파 온라인’ 이나 ‘프리스타일’ 같은 온라인 스포츠 게임이 춘추 전국시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국내 MMORPG에 많은 영향을 준 WOW
여기에 2005년부터 불어온 AOS 장르의 열풍은 게이머들에게 많은 선택지를 제공해 주었다. 아쉽게도 이 기간 국내 콘솔 시장은 심각한 불법 복제로 인해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지만, 온라인 게임 시장은 게이머들에게 훨씬 다양한 장르들을 선보이며 양적인 성장을 이루어 냈다. 플레이를 즐기는 이들까지 생각하면 꼭 MMORPG가 압도하는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듯 ‘모두가 행복한’ 순간은 2011년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을 강타한 ‘리그 오브 레전드(LOL)’ 에 의해 끝을 맺게 된다. AOS 장르를 체계적으로 완성해 출시된 LOL은 과금을 하지 않아도 과금을 한 사람과 전혀 차이 없는 플레이가 가능했고, 오직 자신의 실력만이 중요했다. 덕분에 LOL은 기존 국내 AOS 유저들은 물론이고 FPS를 즐기던 게이머들과 이제 막 게임에 입문하는 학생들까지 유입시키며 스타 이후 최고의 대세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는 ‘남들 다 하는데’ 라는 군중 심리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남들이 다 하면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게이머들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국내 게임 시장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70~80년대 초의 게이머들에게 LOL이란 신체적으로 따라가기 힘든 게임일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두뇌 회전과 반응 속도, 그리고 피지컬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프로게이머들이 25세가 넘어가면 슬슬 은퇴를 고려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크다.
심지어 0.1초의 반응만 늦어도 압살 당하는 상황에서 당시 30대와 40대 초반에 접어든 1세대 게이머들은 젊은 유저들과의 갭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카트라이더 등으로 경쟁적인 게임을 위주로 해 왔던 2세대 게이머들은 다른 이들의 잘못을 험한 말로 지적하기 일쑤였고, 게임이 끝날 때 마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훈훈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한 시간상으로 국내 3세대 게이머라 할 수 있는 중 고등 학생들과의 세대 격차는 1세대 게이머들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과거 스타 열풍과 다른 점은 그 때는 지인들과 경기를 주로 한 만큼 아저씨들이 플레이를 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랜덤한 상대와 대전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플레이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올드 게이머들에게 시류에 편승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MMORPG로 돌아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왔다. 젊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선택은 단지 그것 뿐이었던 것이다(아니면 가끔 스타나 하던가). 현질을 한다고 해도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 모바일 게임의 약진
이러한 1세대 국내 게이머들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슷한 길을 걷게 된 2세대 초입부 게이머들의 선택은 모바일 게임이었다. MMORPG와 달리 모바일 RPG는 성장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현질을 통해 쉽게 강해질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경제적 핵심 세력인 이들에게 매력적인 부분으로 다가왔고, 그만큼 모바일 게임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매출액에 있어서도 다른 플랫폼을 훌쩍 뛰어 넘는 모습을 보였고 말이다.
무엇보다 젊은 층은 모바일 게임을 온라인 게임과 구별되는, 또 다른 컨텐츠로 인지하는데 반해 30대 이상의 게이머들은 이것을 MMORPG를 대체할 인지해 많은 시간과 금전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온라인 MMORPG 시장은 급격히 유저들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워낙 버는게 많으니 연예인들을 광고 모델로 쓰는건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콘솔 게임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한다. 이는 PS4 같은 기기들이 불법 복제의 영향에서 자유로와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매력을 갖추게 된 1,2 세대 게이머들이 지속적인 소비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경쟁 구도의 온라인 게임이나 MMORPG가 싫어 반대급부로 콘솔 게임으로 돌아선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의 PC 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SRPG나 액션 장르 등을 즐기는 데는 콘솔 게임 만한 것이 없었고 이는 현재 시류상으로 다소 마이너 장르에 속하는 게임을 하는 데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다.
RPG를 하려면 콘솔 게임으로…
■ 오버워치에서 배틀 그라운드로…
이러한 구도는 2015년을 넘어서며 더욱 더 굳건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어린 시절 추억을 같이 했던 국내 1세대 게이머들은 이제 게임을 하기에는 어느덧 주변 눈을 의식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90년대 전후에 출생한 2세대 게이머들 역시 밀레니엄 세대인 3세대 게이머들에게 조금씩 실력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 역시 어릴 때부터 경쟁적인 게임에 익숙한 탓에 주류 게임에 익숙하지만 어릴 때부터 제한 없이 게임을 즐겨 온 학생들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적응을 시작했고, 그 격차도 서서히 벌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FPS를 기반으로 한 ‘오버워치’ 와 ‘배틀 그라운드’ 의 출시는 수 년간 고착화 되어 있던 게임 시장에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LOL에서 젊은 층에 밀려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던 30대 전후의 게이머들이 많은 플레이를 통해 익숙한 FPS 게임에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현재 상황 자체는 배틀 그라운드가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러한 장르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오버워치의 영향이 크다. 상대적으로 블리자드의 네임 벨류가 강한 2,30대의 게이머들은 ‘믿고 하는’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를 자연스럽게 플레이 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다시금 FPS의 재미에 빠져 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버워치가 어느 정도 이슈가 되면서 그간 LOL만 해 오던 중고등 학생들에게도 선택적 측면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배틀 그라운드는 FPS에 익숙한 2,30대와 서든 및 오버워치로 FPS의 재미를 알게 된 중,고등 학생들에게 어필하며 최고의 게임이 되었다. 무엇보다 1대 100이라는 경쟁적 구도가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젊은 층에게 어필하면서 단기간에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하게 된다.
배틀 그라운드는 의도치 않게 국내 게이머들 스타일과 맞으며 대박 친 케이스다
배틀 그라운드의 인기는 그간 적수가 없는 듯 보였던 LOL의 아성을 단숨에 무너트릴 정도이고 현재로서는 맞싸울 만한 적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게임 스타일 자체가 국내 게이머들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진다.
■ 트렌드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MMORPG나 디아블로 시리즈 같은 액션 RPG, 그리고 시뮬레이션 장르는 게임의 주류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템포가 빠르고 다수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식의 게임에 익숙한 현재의 주력 게이머들은 이러한 장르에 별반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콘솔 게임의 경우, 이미 과거에 비해 RPG나 시뮬레이션 장르의 비중이 줄어들었으며, 그보다는 액션이나 스포츠 장르에 치중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를 선호했던 과거의 게이머들은 게임을 멀리 하게 될 나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흥행 실패를 기록한(사실 그 자체의 성적만을 본다면 나름 성공적이다. 단지 전작과 엄청난 비교가 됐기 때문이지) 스타크래프트 2나 생각보다 빠르게 생을 마감한 ‘디아블로 3’를 보더라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여기에 ‘블레이드 앤 소울’ 이후 국내에서 확실한 성과를 올린 MMORPG가 없다는 것도 그렇다.
스타 2 역시 과거와 같은 파괴감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익 자체는 모바일 게임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지만 이는 앞서 언급했던 30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게이머들이 모바일 게임으로 돌아선 이유가 크다. 제작사 역시 이러한 점을 알기에 리니지부터 시작해서 테라, 라그나로크 및 아키에이지와 심지어 가장 최근에 발매된 검은 사막까지 모바일 버전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대부분의 MMORPG들도 몇 년 이내에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프로젝트 TL’ 이나 ‘에어’ 같은 대작 게임이 등장해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 예측된다. 이미 ‘아이온’ 이나 ‘블레이드 앤 소울’ 등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들도 부분 유료화 형태로 돌아섰으며, 제작사들의 지향점 역시 모바일 게임을 향하고 있다.
특히나 LOL의 인기 이후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국내 제작사들이 모바일 게임에서 대박을 맞이한 만큼 ‘경제력을 갖춘’ 게이머를 타깃으로 하는 이러한 모바일 게임 정책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의문이고, 금전적인 압박이 너무 큰 탓에 게이머들도 모바일 게임에서 점차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지속적인 인기는 있을지 몰라도 지금과 같은 수익성을 올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물론 기존의 MMORPG 유저들이 대거 모바일로 넘어간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수익은 보장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재의 국내 게임 시장은 분명 템포가 빠른 게임, 그리고 경쟁이 주가 되는 게임들이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0년 전, 그리고 20년과 30년 전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만한 변화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의 국내 게임 시장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게임 시장을 주도하고 있을까, MMORPG는 그 때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까. 모바일 게임의 높은 수익성은 꾸준하게 이어질 것인가. 아마도 지금까지의 흐름을 참고한다면 미래의 모습도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미래는 ‘과거’ 속에 답이 있으니 말이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